35.중종-중종반정, 진성대군과 반정3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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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조선왕조

35.중종-중종반정, 진성대군과 반정3대장

by 별나라의 고미 2023.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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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반정 - 반정 3 대장

 

연산군의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에 의해 사림과 훈구세력이 초토화되었다.

경기도 주변에 금표를 세워 사냥을 빌미로 한 자신만의 놀이동산을 만들어 주민들을 다 쫓아내 백성들의 원망이 하늘을 찔렀고, 수많은 운평과 흥청들과 뒤섞여 놀다가 국가재정을 파탄 낸 연산군...

연산군도 이런 자신이 언젠가 제거될 것이라고 예감했고,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으려 해도 이미 늦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니 돌려놓으려고 하려고 생각했는지나 모르겠다.

내재된 그의 인성과 성품이 발현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찌 되었든 연산군 정권 말기에 그동안 연산군을 등에 업고 온갖 부와 권력을 누리며 사치와 향락에 빠져 살던 살아남은 대신들은 서로 위기감을 느끼며 언제 제거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쌓여있었다.

 

연산군말에 사화로 인해 유배 보내졌던 이장곤이 탈출하자, 연산군 아래 마음껏 배를 불리던 살아남은 대신, 대간들은 더욱 초조해했다. 그리고 글들은 먼저 선공을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그들 중에 대표적인 인물들이 이른바 바로 중종반정에 주역인

반정 3 대장 ‘박원종, 유순정, 성희안’이다.

 

박원종은 성종의 형이었던 월산대군의 부인 박 씨의 동생이다.

실록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아 사실의 여부를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박원종의 누이를 연산군이 사모하여 연산군의 아들(세자)를 양육을 핑계로 궁으로 불러들였고,, 이후 연산군은 박 씨를 겁탈하여 아이를 잉태하게 되었다.

이후 박 씨는 그 수치와 치욕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약을 먹고 죽게 되었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이는 과장된 이야기일 확률이 높다.

박원종의 누이 박 씨는 연산군보다 나이도 한참 많았고, 연산군은 박 씨가 병들어 아파했을 때 박원종에게 명을 내려 누이를 병간호하게 하였다.

반정 이후 연산의 밑에서 오랫동안 부와 권력을 누렸던 자신들의 신분 세탁을 위하여 만들어진 이야기이지 않을까 한다.

 

아무튼 박원종은 이러한 누이의 복수를 명분 삼아 예전에 이조참판이었다가 연산군에게 좌천된 성희안, 유순정 등을 끌어들였고,, 마찬가지로 연산군에게 신뢰가 두터웠던 무장 신윤무가 홍경주, 박영문, 등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유순, 김수동, 김감 도 끌어들였다.

이제 거사를 위한 활시위를 당기면 될 뿐이었다.

 

이때 전라도에서 유빈 등이 연산군 폐위를 위한 격문을 퍼뜨려졌다.

박원종, 유순정, 성희안은 먼저 연산군 때 갑자사화를 불을 지핀 임사홍, 연산군의 왕비 신 씨의 오라버니였던 신수근을 제거했다. 그 후 반정 3 대장은 반정세력들과 바로 창덕궁으로 향했다.

그리고 옥쇄를 받아내고, 대비의 윤허도 받아내어 연산군을 끌어내리게 된다.

 

이제 그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왕을 보위에 올려야 했다..

그가 바로 성종의 세 번째 왕비였던 정현왕후(자순대비)의 아들 진성대군, 중종이다.

중종은 당시 자신의 집에서 부인 신 씨와 잠을 자다가 갑자기 반정세력들이 들이닥쳐 끌려 나왔다..

진성대군은 그렇게 이복형제 관계인 연산군과 그의 충족들에게 눈에 띄지 않고, 거슬리지 않기 위해 그렇게 몸을 기울이며 조심하고 또 조심했건만 결국 이렇게 가는구나하고 벌벌 떨며 체념하였다.

하지만 반대로 자신이 왕이 된다고 하니 그저 얼떨떨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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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 3 대장에 의해 왕위에 오른 중종 정권 초 5~7년 정도는 그들에게 말 그대로 아바타가 되어 끌려 다녔다.

당시 중종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중종은 바로 첫 시련을 겪게 된다.

반정에 의해 정권을 장악한 반정 3 대장 박원종, 유순정, 성희안 등은 먼저 중종의 첫 부인인 신 씨(단경왕후)를 폐위시키를 고한다.

연산군의 잔존 세력은 모조리 척결하기를 원했던 반정공신들에 의해 결국 단경왕후는 왕비가 되지 못하고 폐비되고 쫓겨나고 만다.

중종은 어머니 자순대비에게 매달리며 부인 신 씨의 폐위를 막아주기를 원했으나, 자순대비는 반정세력을 이길만한 힘이 없었기에 반정 3 대장의 폐비 건의에 동조하게 되었다.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보면 단경왕후는 인왕산 치맛바위에 올라 매일같이 경회루가 보이는 쪽으로 흰 치마를 흔들며 중종에게 문안 인사하며 그리워하는 것으로 나온다.

 

내관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중종은 몇 년을 단경왕후를 그리워하며 슬퍼했다고 그려진다.

구구 절절하고 아름다운 슬픈 로맨스 같은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중종은 로맨티시스트로 그려졌지만, 사실 단경왕후가 폐위된 후 몇 년이 지나면서 그렇게 폐비를 그리워하지도 않았고, 흥청이었던 경빈 박 씨를 총애하고, 명종의 어머니이기도 한 문정왕후와 혼사를 서두른 것을 보면 그렇게 로맨티시스트로 보이지만은 않는다.

결정적으로 중종이 죽기 전까지 단경왕후를 단 한 번도 찾은 적이 없다는 기록을 통해 조심스럽게 중종의 로맨스를 의심하게 된다.

.

중종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지지 않아서 필자인 본인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지금도 망설여지고 고민이 된다.

실록이나 야사들을 참조해 보면, 중종은 초기에 자신을 마음대로 조정하려던 반정세력들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하기 위해 때를 기다리고, 또 새로운 세력으로 구세력을 몰아내고, 새로운 세력은 또 다른 새로운 세력을 몰아내는... 그야말로 '토사구팽'의 일인자로 중종이 그려진다.

 

중종시대에는 워낙 쟁쟁한 인물들이 많이 스쳐 지나가서 큰 흐름을 이해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어서, 중종 재위 시절 폭풍처럼 한 시대를 풍미하다가 이슬처럼 사라진 복잡 다반사 한 인물들을 간단히 미리 요약해 본다.

이 관계도를 참조해서 이야기를 들어본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편부터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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